밤 11시 50분, 전기 간판이 스르륵 꺼졌다.
불 꺼진 유리문 너머로 마사지샵 안이 조용해졌다.
밖은 여전히 습기 가득한 여름밤, 난 마지막 손님으로 2시간 스웨디시를 받았다.
그냥 “수고하셨습니다” 하고 나가려는데, 매니저 언니가 문을 잠그더니,
나를 빤히 보며 말했다.

“오늘 늦었죠? 차 한 잔 마시고 가실래요?”
처음엔 별뜻 없다고 생각했다.
사람이 피곤하면 오해도 하니까.
그런데 이 말을 들은 순간, 그날 마사지 내내 느꼈던 작은 디테일들이
머릿속에 한꺼번에 떠올랐다.
마사지 중에도 자꾸 제 이름을 부르던 것,
평소보다 훨씬 오래 손을 얹고 있던 것,
마지막에 수건으로 제 뒷목을 감싸주며 “오늘따라 분위기 좋다”고 했던 것.
“어... 차요?”
내가 얼떨결에 대답하자, 언니는 잠시 미소 지으며 안쪽 룸으로 들어갔다.
조그만 탕비실에서 은은한 국화차 향기가 새어 나왔다.
마사지샵은 낮에는 너무 밝고 시끄럽다.
손님들 예약 전화, 왔다 갔다 하는 관리사들,
영업용 목소리들.
그런데 밤엔 모든 게 달랐다.
에어컨 바람도, 조명도, 조용히 울리는 잔잔한 음악도
왠지 더 가까워지고 부드러워졌다.
“여기 앉아요.”
언니가 안내해 준 곳은 평소 대기실 구석,
관리사들이 잠시 누워 쉬는 작은 소파였다.
내 자리에 국화차 한 잔이 놓였다.
컵을 드는 순간, 손이 조금 떨렸다.
사람이 긴장하면 사소한 소리도 크게 들리는데,
찻잔이 부딪히는 소리가 유난히 컸다.
“오늘 좀 기분 안 좋아 보이던데요.”
언니가 먼저 말을 꺼냈다.
낯선 누군가에게 속마음을 들키는 기분이 이상했다.
그날 나는 회사에서 크게 혼이 나고,
술도 못 마시고 그냥 마사지나 받자고 들어왔던 거였다.
“...그런 거 어떻게 알아요?”
“오래 보면 다 보여요. 손에 힘 주는 것도 다르고,
눈도 잘 안 마주치고.”
차를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처음엔 가게 문 잠가 놓고 이러는 게 좀 불안했는데,
이상하게도 점점 마음이 편해졌다.
마치 내가 이곳의 손님이 아니라,
같은 일을 하는 동료나 친구가 된 기분이었다.
그렇게 30분쯤 지났을까.
언니는 내 손에 수건을 얹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사실... 내가 이런 얘기 잘 안 하는데.”
그 순간, 귀가 쿵 하고 울렸다.
“가끔... 좋은 사람한테 더 잘해주고 싶을 때가 있어요.”
눈을 마주쳤는데, 이상하게 그 눈빛이 따뜻했다.
그때 깨달았다.
‘차 마시고 가요’는 정말 차 한 잔일 수도 있고,
어쩌면 더 큰 위로가 필요하다는 신호일 수도 있다는 걸.
집에 돌아오는 길,
손에 국화차 잔향이 은은히 남아 있었다.
그날 이후, 난 이 마사지샵에 더 자주 갔다.
그때 그 순간이 뭐였는지는 아직도 명확히 정의할 수 없다.
썸? 우정? 일탈?
단 하나 확실한 건,
사람은 때로 낯선 공간에서, 낯선 사람에게서 가장 진한 위로를 받는다는 것.
아마 이 썰을 읽는 분들도
언젠가 “차 마시고 가요?”라는 말을 들을 기회가 있을 거다.
그때 마음이 움직인다면,
조심스럽게, 그러나 솔직하게 응답해도 좋다.
밤은 늘 낮보다 솔직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