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밖으로 스며드는 희미한 새벽빛과 함께 눈을 뜬 순간, 몸은 여전히 어제의 피로를 끌고 있었다. 스마트폰 화면에 떠오른 7시 30분이라는 숫자를 보며 한숨부터 나왔다. 또 다른 하루가 시작되었고, 마음 한구석에는 막연한 무게감이 자리잡고 있었다.
부엌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무거웠다. 평소처럼 기계적으로 물을 끓이고, 원두를 갈아 넣었다. 드립 커피를 내리는 과정은 언제나 똑같았지만, 오늘따라 그 소리들이 유독 선명하게 들려왔다. 물이 끓는 소리, 원두가 갈리는 소리, 그리고 뜨거운 물이 필터를 통과하며 만들어내는 작은 물방울들의 합창.
첫 모금을 입에 머금는 순간이었다. 쌉싸름한 맛이 혀끝을 스치면서 뇌리에 전해지는 그 특별한 감각. 평범했던 아침이 갑자기 다른 색깔로 물들기 시작했다. 마치 흑백사진에 색을 입히는 것처럼, 세상이 조금씩 선명해지는 느낌이었다.
커피 잔을 두 손으로 감싸며 느끼는 따스함은 단순히 온도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 온기가 손끝에서 시작되어 팔을 타고 올라가며 가슴까지 전해질 때, 무언가 단단했던 것들이 서서히 녹아내리는 듯했다. 어깨에 얹혀있던 보이지 않는 짐들이 하나씩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창가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바라본 거리 풍경은 평소와 다름없었다. 똑같은 건물들, 똑같은 나무들, 그리고 출근길을 서두르는 사람들의 모습. 하지만 내 눈에 비친 모든 것들이 어제와는 달라 보였다. 아니, 달라진 건 사물이 아니라 그것들을 바라보는 내 마음이었다.
세 번째 모금을 넘길 즈음, 문득 깨달았다. 이 변화는 카페인의 각성 효과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이었다. 커피 한 잔을 마시는 행위 자체가 나에게는 하나의 의식이었고, 하루를 시작하는 나만의 방식이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나는 온전히 나 자신과 마주하고 있었다.
뜨거운 커피가 목을 타고 내려가며 몸 전체에 퍼지는 포근함. 그 순간 마음속 깊은 곳에서 작은 미소가 피어올랐다. 어제까지 막막하게만 느껴졌던 오늘이라는 시간이 갑자기 반가워졌다. 할 일들이 부담스럽기보다는 하나씩 해결해나갈 수 있는 작은 도전들로 보이기 시작했다.
컵을 비우며 나는 이해했다. 커피가 내 기분을 바꾼 게 아니라, 커피를 통해 잠시 멈춰 서서 내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을 가졌기 때문이었다. 그 짧은 순간의 여유가 하루 전체의 색깔을 바꿔놓았다.
이제 컵을 씻으며 생각한다. 매일 아침 마시는 커피 한 잔이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새로운 하루를 맞이하는 나만의 의식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작은 의식이 얼마나 소중한 변화를 가져다주는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