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야, 오랜만이야. 오늘은 우리만의 시간 보내자.”
그녀의 설레는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못 본 척했다.
내 배 속에서 꼬르륵 하고 울려대는 저주의 북소리를.
사실 그날 아침부터 예감이 좋지 않았다.
전날 야식으로 먹은 치즈떡볶이, 그리고 새벽에 한 컵 더 마신 믹스커피.
그 둘이 손을 맞잡고 내 장 속에서 혁명을 준비 중이었다.
하지만 이미 모텔 방 예약했고,
그녀와 오랜만의 재회를 위해
비싼 과일 바구니도 주문해뒀는데…
그 어떤 공포영화도,
이 상황만큼은 스릴 넘칠 수 없었다.

엘리베이터에 함께 오를 때,
나는 이미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배에선 경고등이 반짝이며 켜졌다.
지금이라도 도망가야 해.
하지만 그녀는 내 팔을 꼭 잡고 웃었다.
“오늘 진짜 기대돼.”
그래… 나도 기대됐어.
한 시간 전까진.
방 문을 열고 들어간 순간,
나는 본능적으로 화장실 위치부터 체크했다.
그리고 바로 절망했다.
방음이 전혀 안 되는 작은 유리문 화장실.
그곳은 내 존엄을 산 채로 집어삼킬
무음고문의 무대였다.
“자기야, 샴페인 마실래?”
“어…잠깐… 나… 물 좀 마시고…”
나는 작은 테이블에 앉아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그 순간 푸르륵 하는 소리가 속에서 올라왔다.
진동은 오지 않았지만,
내 귀에는 폭발음처럼 크게 들렸다.
“괜찮아? 얼굴이 하얘.”
“아…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살짝 긴장돼서…”
아니, 긴장이 문제가 아니었다.
내 장이 해방을 요구하는 중이었다.
그녀가 샤워하겠다며 욕실로 향하자,
나는 그제야 숨을 고를 수 있었다.
그녀가 샤워하는 동안,
나는 침대에 웅크린 채 핸드폰을 검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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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머리에선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이러다간 정말 사고 치겠다 싶었다.
갑자기, 욕실 문이 살짝 열리며 그녀가 말했다.
“자기야, 수건 좀…”
순간, 복부에 충격이 왔다.
나는 진짜 울 뻔했다.
샤워를 마친 그녀가 나오자,
나는 최대한 태연한 척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 잠깐 통화 좀 할게.”
그녀가 고개를 갸웃했다.
“지금?”
나는 냉장고 문을 열어
과일을 꺼내는 척하며 중얼거렸다.
“응… 회사 쪽 급한 거라… 5분만…”
그리고 화장실 문을 닫자마자,
나는 드디어 해방의 준비를 했다.
물을 틀었다.
아니, 폭포처럼 틀었다.
이어폰을 연결해 음악도 틀었다.
이것이 내 존엄의 마지막 방패.
그리고…
그동안 쌓였던 모든 것이
인생 최대의 폭발음과 함께 쏟아졌다.
화장실에 앉아 숨을 고르며,
나는 작은 인생의 깨달음을 얻었다.
낭만? 설렘?
폭풍설사 앞에선 다 부질없다.
물을 두 번 내리고,
탈진한 몸을 간신히 일으켰다.
거울 속 내 얼굴은
그야말로 ‘생환자’였다.
문을 열자
그녀가 침대에 앉아 내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괜찮아? 얼굴이 왜 그래?”
나는 마지막 자존심을 끌어모아 말했다.
“아… 급한 통화가 좀…”
그녀가 작게 웃으며 말했다.
“아니야, 다 들렸어.”
그 순간,
나는 두 번째 폭풍설사를 할 뻔했다.
그날 이후,
나는 다짐했다.
데이트 전날 야식 금지.
모텔 화장실 구조 반드시 확인.
그리고 무엇보다…
사랑보다 급한 건 배설이다.
✅ Tip
- 모텔 갈 땐 미리 장 상태를 점검하세요.
- 부끄럽더라도 솔직히 말하는 게 차라리 낫습니다.
- 그리고… 방음 잘되는 방을 고르세요.
당신의 존엄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