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부쩍 부동산 관련 기사를 읽는 시간이 늘었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점심시간 짬을 내서, 심지어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하루에도 몇 번씩 ‘부동산’이라는 단어를 검색하며 내 집 마련의 꿈과 현실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나를 발견한다. 누군가는 상승을 외치고, 또 다른 누군가는 하락을 경고하는 예측들 사이에서, 나는 그저 내 미래가 어떻게 될지 막연한 불안감만 키워갈 뿐이다. 이게 비단 나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많은 사람이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을 테고, 그래서 오늘은 이 복잡한 마음을 솔직한 글로 풀어보고 싶다. 마치 오랜 친구에게 속마음을 털어놓는 것처럼.
5년 전, 결혼을 앞두고 전셋집을 구하던 시절이 떠오른다. 그때는 ‘언젠가 우리만의 집을 사자’는 막연한 목표만 있었다. 하지만 몇 년 사이에 부동산 시장은 광풍이 불었고, 서울 아파트는 순식간에 감당할 수 없는 가격이 되어버렸다. 2030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 대출)이라는 신조어가 유행했고, 나도 뒤처질세라 조급한 마음에 여기저기 손품, 발품을 팔았다.
주말마다 아파트 단지 앞을 서성이고, 공인중개사무소를 들락거리며 얻은 정보들은 혼란 그 자체였다. ‘지금 아니면 평생 못 산다’는 말과 ‘곧 폭락할 테니 기다려라’는 말이 충돌했다. 그때의 나는 결국 두려움에 휩싸여 아무것도 하지 못했고, 그 사이에 부동산 가격은 또 한 번 저 멀리 도망가버렸다. 돌이켜보면 그때의 나는 어떤 확신도 없이 그저 남들의 이야기에 휩쓸려 다녔던 것 같다. 내 삶의 중요한 결정 앞에서, 나는 왜 그렇게 쉽게 흔들렸을까. 그때의 뼈아픈 경험은 지금의 나에게도 여전히 교훈으로 남아있다.
미디어를 통해 접하는 부동산 전문가들의 전망은 늘 흥미롭다. 어떤 전문가는 거시 경제 지표를 들며 금리 인상과 경기 침체로 인해 부동산 시장이 조정기를 거칠 것이라고 분석한다. 반면, 또 다른 전문가는 공급 부족과 유동성 확대를 근거로 장기적인 우상향을 예상한다. 이들의 논리는 모두 일리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그들의 예측이 나에게 직접적인 해답을 주지는 않는다. 나는 고금리로 인한 대출 이자 부담과 끊임없이 오르는 생활비 사이에서 허덕이는 평범한 직장인일 뿐이다. 전문가들의 분석은 거대한 숲을 보여주지만, 나는 그저 눈앞의 나무를 보며 어떻게든 이 위기를 헤쳐나가야 한다. 그래서 나는 이제 단순히 그들의 예측을 좇기보다는, 내 삶의 맥락에서 나에게 가장 적합한 선택이 무엇일지 고민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나에게 부동산은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투자 수단이 아니다. 부동산은 안정감, 그리고 삶의 터전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팍팍한 삶 속에서 퇴근 후 돌아갈 수 있는 나만의 공간, 가족과 함께 행복한 추억을 만들 수 있는 보금자리. 그런 곳을 마련하고 싶다는 소박한 바람이 나에게는 가장 큰 원동력이다. 물론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동산은 중요한 자산임이 분명하지만, 그 본질적인 가치를 잊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무리한 대출로 인해 삶의 질이 떨어진다면, 과연 그것이 행복한 삶일까? 나는 이 질문에 대해 늘 스스로에게 답을 구하고 있다. 내 집을 마련하겠다는 목표는 변함없지만, 그 과정에서 행복을 잃지 않는 것, 그것이 내가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한 가치다.
최근의 부동산 시장은 그야말로 안갯속이다. 금리 인하와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감과 여전한 고물가, 고금리에 대한 불안감이 공존한다. 이러한 불확실성 속에서 나는 섣불리 무언가를 결정하기보다는, 나 자신과 내 가족의 삶에 집중하기로 했다. 무조건적인 매수나 매도보다는, 현재의 상황을 냉정하게 판단하고 내게 맞는 로드맵을 그려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는다. 늦더라도, 조급해하지 않고 꾸준히 자산을 모아가며 기회를 엿볼 것이다. 부동산 시장의 미래는 누구도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나 자신과 내 가족의 미래를 위한 노력은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부동산 시장에 대한 솔직한 고백을 마치며, 나는 이제 더 이상 남들의 이야기에 휘둘리지 않을 것이다. 내 삶의 주체는 오직 나뿐이니까. 불안감은 잠시 접어두고, 오늘 하루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며 나아가려 한다. 그렇게 한 걸음씩 뚜벅뚜벅 걷다 보면, 언젠가 내가 꿈꾸는 그 집의 문을 열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작은 희망을 품고 오늘도 나는 이 글을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