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새벽의 메시지
강원도의 워치 스파를 나선 차무식은, 한참 동안 주차장에 서 있었다.
몸은 개운했지만, 마음은 오히려 더 무거워졌다.
VIP 멤버십 카드가 주머니 안에서 이상하게도 무게를 더했다.
휴대폰 화면이 진동으로 깨졌다.
[오늘 밤, 블랙 라운지에 초대합니다. 위치는 추후 공지.]
보낸 이는 카지노에서 처음 본 젊은 남자였다.
그가 건넨 명함, 그가 말했던 ‘진짜 게임’.
무식은 잠시 화면을 바라보다가, 차갑게 웃었다.
‘이러다 영영 못 돌아가는 거 아냐?’
하지만 돌아갈 곳도, 돌아가야 할 이유도 이미 다 희미해진 지 오래였다.
🚘 2. 검은 승용차의 행선지
밤이 완전히 내린 도로 위로, 검은 세단 한 대가 미끄러지듯 달렸다.
차무식이 탄 조수석엔 은색 서류봉투가 놓여 있었다.
그 안엔 5억 중 일부 현금과 스파에서 받은 VIP 카드, 그리고 오늘 밤 블랙 라운지에 입장할 초대장이 함께 들어 있었다.
운전석의 사내는 검은 수트를 입고, 시종일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차무식이 질문했다.
“거기선 뭘 하죠?”
“판입니다.”
딱 한 단어였다.
무식은 피식 웃었다.
“어떤 판?”
“…당신이 상상하는 그 이상이요.”
차창에 반사된 자신의 얼굴이 낯설었다.
멍하니 그 얼굴을 보며, 스스로에게 물었다.
‘어디까지 가보려는 거냐, 차무식.’
🕯️ 3. 블랙 라운지의 문
차는 도심 외곽, 낡은 호텔 뒤편에 멈췄다.
겉으론 아무 간판도 없는 철문이 있었다.
운전자가 내리더니 문을 두드렸다.
“VIP 입장.”
철문이 묘하게 무게감 있는 소리로 열렸다.
안으로 들어서자, 완전히 다른 세계가 펼쳐졌다.
마치 영화 세트 같았다.
거대한 샹들리에, 검은색 벨벳 커튼, 테이블마다 앉은 낯선 얼굴들.
탁탁 부딪히는 칩 소리, 웃음소리, 낮은 음악이 섞여 공기를 눌렀다.
“차무식 고객님, 어서 오십시오.”
검은 드레스를 입은 여성 직원이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이곳은 블랙 라운지. 게임에 참가하시면, 환영 보너스와 멤버십이 부여됩니다.”
무식은 초대장을 내밀었다.
“참가하겠습니다.”
그녀가 웃으며, 작은 메탈 칩 한 개를 손에 쥐어주었다.
“이게 오늘 밤 당신의 키입니다.”
🎲 4. 또 다른 판
VIP 테이블이 한가운데에 놓여 있었다.
어두운 조명 속에서도 테이블 위 칩의 광택이 섬뜩할 만큼 선명했다.
이미 몇 명의 남자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 중에는 카지노에서 본 젊은 남자도 있었다.
그는 무식을 보자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왔군요.”
“이게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겠네요.”
“마지막? 하, 그런 건 없어요. 여기선 더 큰 판이 계속 나옵니다.”
그가 웃으며 말했다.
무식은 자리에 앉았다.
테이블 위에 메탈 칩을 올리자, 딜러가 고개를 숙였다.
“블랙 라운지의 규칙은 간단합니다. 잃으면 잃은 만큼 떠나야 합니다. 이길 땐… 그 대가도 준비하셔야 합니다.”
무식은 잠시 숨을 고르고, 스스로에게 중얼거렸다.
‘괜찮아. 이미 돌아갈 길은 잃었으니까.’
🃏 5. 첫 게임 – 살의의 기운
카드가 돌았다.
칩이 테이블 위에 쌓여갔다.
첫 판은 의외로 간단했다.
무식은 몇 번의 베팅으로 이익을 냈다.
주변의 시선이 미묘하게 바뀌었다.
하지만 그때, 딜러가 다음 라운드를 준비하며 낮게 말했다.
“이제부터 진짜 게임입니다.”
조명이 더 어두워졌다.
테이블 중앙에 새로운 룰렛이 놓였다.
그리고 흑단 상자 하나가 들어왔다.
딜러가 상자를 열자, 안에는 여러 장의 금고 열쇠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이 판에서 승리한 분은 이 열쇠 중 하나를 가질 권리를 드립니다.”
누군가 물었다.
“금고 안에는 뭐가 있습니까?”
딜러의 눈빛이 차가웠다.
“돈도, 정보도, 혹은 당신이 상상하지 못한 것들도.”
순간 공기가 서늘해졌다.
무식은 심장이 뛰는 걸 느꼈다.
5억 잭팟도, 스파의 아로마 향도, 다 사라지고 없었다.
오직 이 긴장감만이 그의 삶을 증명해 주는 것 같았다.
🌑 6. 차무식의 선택
딜러의 손이 룰렛 위를 스쳤다.
참가자들이 숨죽였다.
칩을 쥔 손에 땀이 베였다.
그 순간, 차무식은 깨달았다.
‘나는 결국 이 판에 다시 서려고 그 모든 돈을 얻었구나.’
웃음이 터질 뻔했다.
하지만 참았다.
이곳은 웃음을 보이는 순간, 약점이 된다.
칩을 테이블 중앙으로 밀어넣으며, 낮게 중얼거렸다.
“올인.”
주변의 시선이 동시에 그에게 몰렸다.
젊은 남자가 작게 박수를 쳤다.
“역시. 차무식답네요.”
룰렛이 돌기 시작했다.
차무식은 눈을 감았다.
어쩌면 이번이 진짜 마지막일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적어도 한 번은 끝까지 베팅해보고 싶었다.
그의 귀에 룰렛이 돌아가는 낮은 금속음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그리고 그 순간, 어떤 이상한 평온이 그를 휘감았다.
이것이 차무식의 블랙 라운지 첫 밤이었다.
그리고 모두가 알고 있었다.
이 판이 끝나면, 그의 삶은 다시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