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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알고싶다 : “그날, 자매의 비명은 누구를 향하고 있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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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인사이트
127 · 25-07-20 09:17

“그날 새벽, 한 남자의 집착은 비극이 되었고…

세상은 또 한 번, 교화라는 이름의 명제를 던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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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의 시작, 2012년 7월 20일 새벽



2012년 여름의 한복판, 울산 중구의 조용한 다세대 주택에서 끔찍한 사건이 벌어집니다.

한 남자, 김홍일. 당시 26세였던 그는 이른 새벽, 단단히 결심한 얼굴로 그 집을 향해 발걸음을 옮깁니다.


그의 마음엔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한 분노와 집착이 뒤엉켜 있었습니다.

피해자 자매 중 언니 A씨, 김홍일의 전 연인이었습니다.

3년간의 교제 끝에 A씨가 이별을 통보하자, 김홍일은 **“죽여버리겠다”**는 말을 남기며 현실을 부정하기 시작합니다.





🧠계획된 범죄, 그것은 ‘우발적’이지 않았다



그는 범행 전날 출근도 하지 않은 채 부산의 불법 성매매 시술소를 방문하고,

울산으로 되돌아오는 길에 30cm 길이의 흉기를 구입합니다.

이쯤 되면, 우리는 질문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연이었을까요? 아니면, 철저히 계산된 움직임이었을까요.”





🕳️가스배관을 타고 침입한 그 새벽



사건 당일 새벽 3시 10분.

김홍일은 가스 배관을 타고 피해자 자매의 집 2층 베란다로 침입합니다.

부모가 없는 틈을 타, 거실에서 자고 있던 여동생을 먼저 공격했고

언니 A씨가 동생의 비명을 듣고 방에서 나오자 그는 잠시 도주하는 척했습니다.


하지만… 다시 가스배관을 타고 올라온 김홍일은

119에 신고 중이던 A씨에게 또다시 칼을 휘두릅니다.

그녀의 목과 가슴 등 12곳에 날이 꽂혔고, 결국 생명을 잃었습니다.


“그는 왜 두 번 올라왔던 걸까요?”

“단순한 격분이었을까요, 아니면 철저한 망상 속 시나리오였던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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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대적 수색과 55일간의 도주



범행 직후, 김홍일은 차를 몰고 강원도로 도주하며

휴게소에서 신용카드까지 사용합니다.

이후 차량을 부산의 한 대학 주차장에 버리고 기장군의 야산으로 숨어들었습니다.


1200여 명의 경찰, 헬기 3대, 수색견 7마리…

그러나 김홍일은 50일 넘게 검거되지 않았습니다.

그를 검거한 것은 다름 아닌, 한 산불 감시원의 눈썰미였습니다.


“사람의 눈은 때론 위성보다 정확합니다.”

“그는 함박산에서 55일간, 도망쳤습니다. 하지만 정의는, 결국 멈추지 않았습니다.”





⚖️사형 → 무기징역, ‘교화 가능성’이라는 이름 아래



2013년 1월 25일, 울산지법은 사형을 선고합니다.

“명백한 계획 범죄이며, 사회로부터 격리해야 한다”는 판단이었습니다.


하지만 김홍일은 항소합니다.

그리고 2심, 부산고등법원은 무기징역으로 감형합니다.


그 이유는?

“피고인의 나이, 성장 과정, 사회 경력 등을 고려할 때 교화 가능성이 있다.”


“교화, 과연 누구를 위한 단어일까요.”

“남겨진 사람들에게, 이 감형은 어떤 의미였을까요.”





🗣️유치장에서의 발언, 그리고 뒤늦은 분노



판결이 확정된 후, 뒤늦게 유치장에서의 김홍일의 발언이 알려지며

대중의 분노는 다시 들끓습니다.


“징역 20년쯤이면 나가겠지. 나가서 여자 만나고 싶다.”

“사형만 아니면 된다.”


이 발언은, 과연 교화의 증거일까요?

아니면 교화란 말에 기대어 살아남은, 또 하나의 잔혹한 현실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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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하며 : 교화 가능성, 그 판단은 누구의 몫인가



오늘, 우리는 묻고 싶습니다.


“그날 두 자매의 비명은 법정을 향했을지도 모릅니다.”

“교화 가능성이라는 단어 앞에, 진정한 반성과 회한은 있었을까요?”


그리고 또 한 번,

우리 사회가 정의롭기를 바랐던 이름 없는 목소리들은

이 사건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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