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처음 가는 길
나는 부천에서 10년째 살고 있지만, ‘남성전용 세신샵’이 있다는 이야기는 이번에 처음 들었다.
회사에서 야근이 이어지면서 목과 허리가 뻐근하게 굳어버렸고, 친구 녀석이 말했다.
“야, 거기 한 번 가봐. 진짜 사람 되는 기분이야.”
사람 되는 기분이라니.
반쯤 비웃으며 검색해 봤다.
평점은 꽤 높았다.
후기엔 ‘인생 세신’, ‘너무 개운해서 소름 돋았다’ 같은 말이 줄줄이 달려 있었다.
그렇게 반쯤 호기심, 반쯤 피로에 떠밀려 예약을 눌렀다.
🛎️ 2. 문 앞에서의 갈등
예약 당일, 세신샵 간판이 걸린 문 앞에 서자 심장이 쿵쿵 뛰었다.
나는 평생 피부관리도 안 해봤고, 스파라고 해도 찜질방 정도가 전부였다.
게다가 ‘남성전용’이라는 단어가 왜 이렇게 낯선지.
왠지 문을 여는 순간 ‘네가 여기 왜 왔냐’는 표정으로 쳐다볼 것 같았다.
“에이, 그냥 가자.”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가, 다시 용기를 냈다.
손잡이에 손을 얹고 문을 밀었다.
차가운 공기가 훅 들어오며 은은한 허브 향이 퍼졌다.
리셉션에 앉아 있던 직원이 밝게 웃었다.
“어서 오세요. 예약하셨죠?”
민망함을 애써 감추며 고개를 끄덕였다.
💧 3. 세신복의 굴욕
탈의실에 들어가자, 커다란 바구니에 흰 세신복과 작은 수건이 놓여 있었다.
“여기에 옷 다 넣어두시고, 세신복 입으시면 됩니다.”
‘다 넣어두라’는 말이 괜히 마음을 콕 찔렀다.
안에 아무것도 안 입는 게 맞나?
바지라도 하나 입어야 하나?
그런데 벽에 걸린 안내문에 ‘모든 의류를 벗으세요’라고 적혀 있었다.
순간, 내가 지독하게 순진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옷을 벗고 세신복을 입었다.
거울을 보니 뭔가 너무 허전했다.
마치 무방비로 세상에 노출된 기분.
“괜히 왔나…”
얼굴이 빨개져서 문을 열었다.
🧖♂️ 4. 본격적인 세신 – 민망함의 시작
세신실에 들어서자, 나보다 조금 연배가 있어 보이는 남자 선생님이 대기하고 있었다.
“누우세요.”
그 한마디에, 이상하게 더 긴장됐다.
세신대에 누운 순간부터 민망함의 절정이 시작됐다.
미지근한 물이 몸에 쏟아지고, 거친 때밀이 수건이 등을 훑었다.
처음엔 시원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너무 솔직하게 드러나는 몸에 식은땀이 났다.
“힘들면 말씀하세요.”
“아… 네…”
사실 힘든 게 아니라, 민망해서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온몸이 세상에 낱낱이 공개되는 기분이었다.
특히 팔을 들어 올려주시는데, ‘내 겨드랑이 상태를 이렇게 자세히 보는 사람이 또 있을까’ 싶었다.
🫣 5. 귀에서부터 붉어진 순간
등을 다 밀고 나자, 선생님이 말했다.
“이제 앞면도 밀어야죠.”
그 말이 그렇게까지 치명적일 줄은 몰랐다.
나는 얼어붙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게 바로 남자라서 더 민망한 순간인가…’
수건 하나로 간신히 가려진 상태에서 앞면 세신이 시작됐다.
다행히 선생님은 아무렇지 않게, 전문가답게 일하셨다.
그런데 문제는 내 쪽이었다.
평생 이런 경험이 없던 나는, 긴장과 부끄러움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심장이 귀까지 뛰었다.
눈을 감았다.
아무것도 보지 않으면, 민망함도 사라질 것 같았다.
헛된 바람이었다.
🪞 6. 세신이 끝난 후
모든 과정이 끝나자, 몸이 믿을 수 없을 만큼 매끈해졌다.
가벼워진 느낌이 들었다.
그럼에도 얼굴은 여전히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탈의실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이 우스꽝스러웠다.
시원함과 굴욕이 동시에 스며든 표정.
“처음이 제일 민망하세요. 다음부턴 편하실 거예요.”
선생님의 한마디에 이상하게 위로가 됐다.
옷을 다시 입고 나오는데, 리셉션 직원이 미소 지었다.
“처음 세신 받으시면 다들 얼굴 빨개지세요.”
‘그래, 나만 이런 게 아니구나.’
조금은 마음이 편해졌다.
🌃 7. 돌아오는 길
밖으로 나오자 부천 밤공기가 선선했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천천히 걸었다.
오늘만큼은 ‘남자라서 더 민망했던’ 순간들이 가득했지만, 묘하게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야, 거기 진짜 가볼 만하더라. 그런데 다음엔 같이 가라. 나 혼자 너무 민망했음.]
그리고 거울 앞에 섰다.
왠지 조금 달라진 기분이 들었다.
더 깨끗해진 것도, 더 개운해진 것도 맞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오랫동안 방치했던 나 자신을 한 번쯤 돌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이것이 부천 남성전용 세신샵에서 내가 겪은
남자라서 더 민망했던 순간이었다.
하지만 아마도…
나는 언젠가 또 그 문을 열고 들어갈 것이다.
이번엔 조금 덜 민망해진 얼굴로.